| 대통령 토론회는 끝났지만, 언론의 질문은 시작되지 않았다 강명선(부산민언련 정책위원, 부산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박사수료) 2025년 6월3일, 제21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후보자 TV토론회는 경제, 사회, 정치 분야로 나눠 총 세 차례 진행되었다. 선거관리위원회 주관으로 지상파 방송 3사가 공동 중계한 이 토론회는 국민이 후보자의 정책과 철학을 직접 비교하고 확인할 수 있는 장이다. 그리고 무수히 쏟아지는 유튜브, 숏폼 중심의 파편화된 정보 속에서 유일하게 긴 호흡으로 후보자들을 검증할 수 있는 기회다. 하지만 이번 토론회는 오히려 민주주의 근간인 공론장을 훼손했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정치 혐오를 부추기는 표현, 국민을 상대로 한 성폭력 발언, 소수정당 후보 배제, 언론의 무비판적인 중계 보도로 그 모습이 여실히 드러났다. ![]() 제일 먼저 국민의 삶과 직결된 경제 토론회에서는 일자리 창출, 부동산 정책, 에너지 전환과 같은 복잡하고 구조적인 경제 문제가 있었다. 하지만 언론이 주목한 것은 이재명 후보에 대한 ‘호텔경제론’과 ‘커피원가 120’이었다. 사실 관계나 정책적 맥락은 뒷전으로 자극적인 발언들만 보도되었다. 언론은 대선토론회를 통해 후보자들의 정책을 비교하고 유권자가 판단할 수 있도록 정보를 제공해야 함에도 후보 간 말실수, 비유의 적절성 여부, 단편적 인용, 맥락 삭제로 감정적인 대립구도만 부각했다. 사회분야 토론회에서는 세부 주제로 사회 갈등 극복과 통합 방안이 제시되었지만 여성, 성평등의 의제가 충분히 다뤄지지 않거나 교육 분야에 대한 정책은 언급조차 없었다. 지속적으로 확산하는 젠더 갈등, 돌봄과 고용에서의 성별 격차, 청년, 여성의 불안정 노동 문제 등은 사회통합의 핵심 변수임에도 불구하고 주요 후보들은 이를 외면했다. 또한 교육은 세대 간 격차 해소와 사회이동의 관건이지만, 교육격차와 입시제도, 공교육 회복 등 근본 과제에 대한 입장조차 제시되지 않았다. 정치분야 토론회에서는 후보 간의 상호 비방과 네거티브 공세가 주를 이루어 정책 논의가 실종되었다. 후보자의 혐오 발언이 생중계된 이후, 다수 언론은 이를 문제 삼기보다는 막말 논란, 설전, 격돌이라는 중립적 프레임으로 전하거나 이준석 후보의 해명을 전하기도 했다. ![]() 빅카인즈에서 ’이준석‘과 ’젓가락‘을 키워드로 5월 27일부터 28일까지 검색한 결과 총 기사 189건 가운데 젓가락이라는 제목을 사용한 기사는 총 78건이었다. 이준석의 발언을 비판적으로 조명하기보다는 ’젓가락‘이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가십화하거나 흥미 위주의 소비 콘텐츠로 변환했음을 보여준다. 이처럼 정책 실종과 혐오 표현의 문제를 진지하게 다루기보다는 ’화제성‘과 ’조회수‘를 우선한 편집 경향이 드러난다. 토론회의 탈을 쓴 ’일방주장방송‘ 이번 토론회는 형식 면에서도 심각한 문제가 드러났다. 사회자는 후보자 발언 시간만을 형식적으로 통제했을 뿐, 발언 내용에 대한 제지나 윤리적 판단은 전혀 개입하지 않았다. 선거방송토론위원회 규정상 ‘사회자는 질문하지 않는다’는 원칙은 중립성 유지라는 명분 아래, 실질적 토론 진행자의 역할을 포기하게 했다. 후보자 간 자유토론 시간은 발언 시간 확보 경쟁에 치우쳐, 정책 검증보다 자극적 언행과 인신공격이 오히려 효과적인 전략이 되는 역설을 낳았다. 특정 후보는 자신의 시간 대부분을 상대방 비방에 할애했고, 토론 주제와 상관없는 혐오 발언도 여과 없이 전파됐다. 이러한 구조적 허점은 토론회의 공공성을 심각하게 훼손했다. 후보자 발언을 실시간으로 검증하거나, 의제 이탈에 대해 경고할 수 있는 장치가 없는 상황에서, 토론회는 사실상 ‘일방주장방송’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지금의 토론회 형식은 정치적 다양성과 공적 숙의가 실종되었다. 민주주의 제도로서 토론회의 기능과 형식에 대한 근본적인 재점검이 필요하다. 소수정당의 진보 의제는 지우고 상징만 소비 공직선거법상, 토론회 초청 기준은 국회 의석 5석 이상, 직전 전국 단위 선거 비례대표 3% 이상 득표, 여론조사 지지율 5% 이상 중 하나를 만족해야 한다. 이에 따라 민주노동당 권영국 후보는 지방선거에서 비례 득표율 4.14%를 얻어 초청되었지만, 일부 언론은 소수정당 후보의 참여가 토론의 집중도를 흐릴 수 있다며 초청 기준이 지나치게 관대하다는 취지의 보도를 내기도 했다. ![]() 소수정당은 거대 양당이 놓치는 사회적 약자와 노동 현안, 구조 개혁을 공론장에 올릴 수 있는 소중한 정치적 통로다. 권 후보는 불평등과 불안정 노동, 기후 위기 등 주요 후보들이 소홀히 다룬 진보적 의제를 제시했지만, 많은 언론은 이러한 정책 내용보다 김문수 후보와의 악수 거부, 손바닥에 쓴 ‘민(民)’ 등 상징적 행동에 더 주목했다. 실제 보도에서는 권 후보의 정책이나 발언이 단신으로 처리되거나, 갈등 구도 속 ‘이슈 인물’로 소비되는 경향이 두드러졌다. 유권자 다수는 후보가 아닌 언론을 통해 정치정보를 접한다. 그런데 갈등 위주, 흥미 위주의 보도는 다양한 정치적 대안을 이해할 기회를 빼앗으며 국민의 선택지를 사실상 제한하게 된다. 대통령 후보자 토론회는 후보 간 경쟁을 위한 무대가 아니다. 그것은 국민 앞에서 각자의 비전을 설명하고, 공적으로 검증을 받는 절차다. 사회자는 형식상 발언 시간을 배분하고 갈등을 조율해야 하며, 공정성을 보장하기 위해 질문을 자제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언론은 다르다. 언론은 질문할 수 있고, 질문해야만 한다. 정책의 내용, 그 이면에 담긴 가치, 실현 가능성, 윤리적 타당성까지 집요하게 물어야 한다. 그것이 언론의 책무이고 존재 이유다. 토론은 끝났지만, 유권자는 아직 충분한 답을 듣지 못했다. 그 질문을 이어받고, 끝까지 묻고 해설하고 분석해야 할 주체는 바로 언론이다. 지금이라도 언론은 질문을 시작해야 한다. 유권자들이 현명한 선택을 할 수 있는 그날까지. <끝> |
부산민주언론시민연합 아카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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