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위원회] 총선보도 특별칼럼 5. 민심의 바다

민심의 바다  

민심은 천심이라 했지만, 이는 현시대에 맞지 않는 말이다. 이 말의 유래는 서경(書痙)에서 왔다. 당대의 중국 황제는 천자(天子)로도 불렸다. 황제의 뜻이 곧 하늘의 뜻이었다. 행여 황제가 권력을 잃었을 때 이를 설명할 방도가 없으니 민심(천심)을 내세웠을 뿐이다. 서양에서도 십자군 전쟁이나 마녀사냥에 하느님의 뜻을 동원했다. 이처럼 천심을 내세워 폭정을 휘두르면 민심은 기댈 곳조차 없다.


그러면 민심을 비유하는 말로 무엇이 적절할까? ‘물(바다)’에 비유하는 게 더 낫지 않을까 싶다. 순자(荀子)의 왕제(王制)편 ‘군주민수(君舟民水)’에서 유래한 말이다. 물은 배를 띄우지만, 배를 뒤집어엎기도 한다는 의미다. 오늘날 통치자로서의 ‘왕’은 없으니, 배는 ‘정당’으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배는 항구에 있으면 가장 안전하지만, 배는 항구에 머물기 위해 만들어진 게 아니다.” 브라질 소설가 파울로 코엘료의 말이다. △ <‘원칙의 등대’로 세상을 밝히라>(국민일보, 2014/12/10) 기사 사진


바다는 잠잠하지만 바람이 불면 무섭다. 태풍급이면 정당이 아니라 정치판도 뒤집을 수 있다. 정치적 중립성이 모호한 한국의 언론은 어떻게든 바람(순풍)을 일으켜 자신이 지지하는 정당 편을 들고자 한다. 과학적인 여론조사 결과조차 교묘한 편집이나 자의적인 해석으로 유리한 판을 깔아주고자 한다. 공천 과정에서도 이래저래 훈수를 둔다. 그렇게도 정치가 문제라면, 혹은 정치가 그렇게 하고 싶으면, 직접 뛰어들지 왜 저러나 싶은 생각이 들 때가 많다. 민심이 바다고, 정당이 배라면, 언론은 등대로 비유하고 싶다. 직접 배에 올라타기보다 대한민국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해 주면 될 일이다. 아울러 배가 잘못된 곳으로 가고 있다 생각한다면 그것을 여·야 모두에게 공정하게 일깨워주면 될 일이다. 어떤 배에게는 빛을 비추고, 어떤 배에게는 빛을 비추지 않는 등대란 있을 수 없다.


이런 점에서 공식 선거전에 돌입한 지금 한국의 대표 공영방송사가 보도하는 행태는 도가 지나쳤다. 정치적 이슈 혹은 정치인의 말을 두고 여당의 비대위원장 논평을 덧붙이는 것으로 마무리 짓는 보도가 많아도 너무 많아서다. 뉴스 꼭지 한두 개 정도라면 이해하고 넘어갈 수 있다. 그런데 수많은 뉴스 꼭지에서 이런 보도로 일관하다 보니, 국회의원 선거인지 대통령 선거인지 혼란스럽다. 그러다 보니 사장이 된 데 대한 ‘보은’ 차원의 보도인지, 향후 더 높은 자리에 가기 위한 ‘투자’ 차원의 보도인지 의심이 들 정도다. 더 나아가 공영방송이 사장의 의중에 따라 기자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것도 문제일 것이다. 비대위원장의 답변이 의도했던 효과(순풍)를 거두고 있는지 역효과(역풍)를 낳고 있는지 살피고 있는지나 모르겠다. 해당 방송사의 사장은 신문에서 잔뼈가 굵었던 분이다. ‘글’과 ‘말’의 차이를 새삼 깨닫고 있으리라 본다.


국회의원 후보자 면면을 살펴보면 정계에 발을 들여놓기 전, 이미 자신의 분야에서 경력이 화려한 분들이 꽤 많다. 그런데 정당도 하나의 조직이다 보니, 개인의 탁월함이 조직 생리에 묻히는 경우가 더러 있다. 예컨대 입법 과정에서 당론이 자기 뜻과 맞지 않더라도 따라야 할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하나 된 힘으로 뭉쳐야 다른 정당과의 협상에서 유리한 경우, 어쩔 도리가 없다. 전문직 하면 바로 떠올리는 의사들이 지금 보여주고 있는 행태이기도 하다. 각 정당의 공천은 이런 현실을 고려해서 이루어진 것으로 믿고 싶다. 유시민 작가(그도 정치인으로 10년 세월을 보냈다)가 모 유튜브 채널에서 ‘정치인도 전문직’이라 한 것이 이런 현실을 빗댄 표현이리라. 시민들의 투표는 이런 공천 과정과 후보자들의 지역 대표성 자질을 동시에 판단하는 일이다. 그래서 최종적인 선거 결과는 각 정당의 대표가 올곧이 짊어져야 할 책임이기도 하다.


끝으로 국회의원 선거에서의 ‘공약’은 짚고 넘어가야 할 우리 모두의 당면 과제가 아닌가 싶다. 우리 동네에도 선심성 공약을 내세운 각 정당의 현수막이 길가에 가득 찼다. 이런 공약이 국회의원이 해야 하는 공약인지, 구청장이나 군수, 시장이 해야 할 공약인지 헷갈린다. 국회의원이라면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입법 공약을 제안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인권, 환경(기후 위기), 복지, 지속가능성, 공영방송 지배구조, 낙태, 생명윤리 등등 기술과 사회 변화에 따라 대체되거나 새로 입안되어야 할 법안들이 부지기수다. 반면 선심성 공약은 예전처럼 돈 봉투를 뿌리는 것과 매한가지다. 이런 공약 때문에라도 국회의원 당선자들은 예산을 끌어오는 데 유리한 상임위에 배정받으려 안간힘을 쓰고, 국정감사에서 엉뚱한 소리를 하거나 협박성 발언과 호통을 일삼는다. 정치가 후진성을 탈피하지 못하는 근원인 셈이다.


<왜 가난한 사람들은 부자를 위해 투표하는가?>라는 책이 있다. 선진국에서도 장기적인 미래 비전보다 당장 눈앞의 이익에 휘둘리는 투표 행태가 만연해 있음을 보여준다. 박태웅은 <눈 떠보니 선진국>이란 책을 냈다. 전임 대통령은 이를 “눈 떠보니 후진국”이라 비틀었다. 우리 스스로가 어떻게 생각하든 국제사회는 2021년 대한민국을 선진국으로 공식 인정했고, 이번 선거를 유심히 지켜보고 있다. 우리나라는 그 어느 나라보다 교육 수준이 높다. 이런 현명한 시민들이 어떤 집단지성을 보여줄지 자못 궁금하다. 민심의 바다가 요동치는 듯 보이기 때문이다.
<끝>



*부산민언련 총선보도 특별칼럼 부산민주언론시민연합은 제22대 국회의원 총선거를 맞아 유권자중심보도를 제안하는 부산민언련 정책위원 릴레이 특별칼럼을 진행했습니다. 총선보도 특별칼럼은 이번 호를 마지막으로 마무리하고, 5월부터 <월간 릴레이 칼럼>으로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부산민언련 정책위원회 활동에 많은 관심과 지지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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