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투보도집담회 자유발제2-미투 보도가 불편한 이유

*부산민언련은  미투 운동에 대한 언론 보도를 점검해보는 <미투보도 집담회>를 3월 27일 저녁 광안184에서 열었습니다.
이날 행사에는  15명의 회원 및 시민들이 참여해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이날 자유발제를 맡아주신 문미진 회원의  <미투 보도가 불편한 이유> 발표 내용을 소개합니다.

 

#미투 보도가 불편한 이유

 

문미진 (부산민주언론시민연합 모니터팀)

 

저는 미투 보도의 어떤 지점이 저에게 불편하게 다가왔는지 이야기 나누고 싶어서 발표를 하게 됐습니다. 미투 운동에 대해서 계속 이야기해야 하는 이유는, 그동안 의심받고 감춰졌던 피해 여성들의 목소리가 공론장 한가운데서 등장하고 있기 때문인데요,

대부분의 언론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일부에서 미투에 대해서 ‘나도 당했다’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 표현은 가해자가 잘못된 행위를 했다는 것보다 피해자가 수동적으로 당했다는 데 초점을 맞춘 게 1차적 문제가 있구요, 이 피해여성이 ‘말하고 있다’는 현재진행으로 다루지 않고, 이 사건이 과거의 일이라는 데 초점을 맞춘다는 것이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지역 언론을 챙겨보고 있는데요, 부산일보 같은 경우는 사회면이나 문화면에서는 미투 보도 관련해서 보도윤리가 잘 지켜지고 있지만, 정치면에서는 ‘미투가 지방선거를 흔든다’는 식으로 제목을 뽑아서, 같은 언론사 내에서도 논조가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다음은 ‘미투 가해자’라는 표현입니다. 언론은 성범죄 보도를 늘 두루뭉술하게 표현해 왔습니다. 가해자를 일컫어 ‘짐승’, ‘늑대’, ‘악마’라는 단어를 써서 가해자가 우리 주변에 있다는 생각보다는 특별히 악마화된 사람들이 범죄를 저지른다는 인식을 심게 했는데요, 범죄행위를 표현할 때도 ‘몹쓸 짓’, ‘나쁜 손’이라는 식으로 범죄를 축소, 희석시키는 역할을 해왔습니다. 미투 운동 자체가 피해 여성의 1인칭 서술에 의존하고 있는 만큼 언론사들은 지목된 사람을 범죄 가해자라고 단정 지으면 자신들이 그것을 감당해야 하기 때문에, ‘미투 가해자’라고 두루뭉술하게 표현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결론적으로 그것이 어떻게 문제를 낳고 있냐면,

 

여기 기사를 보시면 <목사님, 방문은 열어 놓으시죠. 미투 가해자 안 되려면>이 제목입니다. 미투 운동에 대해서 언론이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잘 알 수 있는 거에요. 가해자가 잘못된 행위를 하지 않았는데, 피해여성들의 예민함이 이 사람들을 가해자로 만들었다고 이야기 하고 있는 거죠.

 

그 다음 기사 <짧은 치마 안 돼…미투 키우는 대한민국 성교육>. 미투 키우는 대한민국 성교육이라니 이게 무슨 말입니까. 자신들이 편하게 논의를 하려고 하니까 이런 불상사를 저지르는 거에요. 성범죄 대상이 될 수 있으니까 짧은 치마 입지 말라는 내용을 보면, 오히려 ‘성범죄 가해자를 옹호하는 대한민국 성교육’이 되는 게 맞는데, ‘미투 키우는 대한민국 성교육’이라고 했어요. 저는 언론이 피해자를 의심하기 때문에, 피해자의 진술을 100%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미투 가해자’라는 두루뭉술한 표현을 사용하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문제는 가해자 중심 보도로 이어지게 됩니다. 피해자에 대해서 신뢰하지 못하니까요. 이 기사 제목 보실까요. <성폭행 가해자 지목…사진작가 로타 “네가 너무 예뻐서 참을 수가 없었다”> 이거 우리가 왜 알아야 되죠? 가해자의 변명을 헤드라인으로 뽑음으로서 우리가 알 필요 없는 것들에 대해서 이야기 하거든요. <이영하, 미투 출신에게 미투 지목…첫 단추가 중요하다> 도대체 기자가 누구한테 감정이입을 하고 있는지. 이영하를 응원하는 듯한 헤드라인을 뽑아내고 있거든요. 그 뒤에도 <김흥국, 성폭행이라니 절대 아니다> 이런 이야기 할 필요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당연히 자기는 아니라고 하겠죠. <조덕제, 오달수 여론몰이 방관할 수 없어> 이거 왜 실어주죠, 도대체. 당연히 자기가 개인적으로는 친하니까 좋은 사람이고 그런 일 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할 텐데, 굳이 보도하지 않아도 될 내용을, 가해자가 얼마나 힘들까 그런 것들을 걱정해주고 있는 거에요. 이게(가해자의 해명을 실어주는 것이) 과연 객관이고 중립이라고 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듭니다.

 

그러면 피해자 중심보도는 어떻게 했어야 했나. 생각을 해보세요. 순결 이데올로기가 강조되는 사회에서 제가 성범죄 피해자에요. 이거 밝히면 나한테 불이익이에요. 그런데 내 얼굴이 다 나가는 TV에 나가서 내가 피해자라고 증언하는데, 이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야 할까요, 아니면 가만히 앉아서 나는 가해자라 아니라고 발뺌하는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야 할까요. 저는 지극히 상식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문제가 흔들리고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가해자의 해명을 중심적으로 보도하면 또다시 논쟁이 이어지게 됩니다. 양측의 입장이 공방을 이어가고, 언론은 계속 이것을 싣는 식의 보도를 하고 있거든요.

 

어제는 곽도원에 대한 기사가 계속 올라오던데 제 상식으로는 이해가 안 가요. 가해자도 아닌 사람에게 찾아가서 돈을 달라고 요구할 이유가 없잖아요. 곽도원 측은 ‘여론전은 하지만 형사고소는 하지 않겠다’고 했는데, 제 상식으로는 협박을 받았는데도 법적 대응을 안 한다는 게 이해가 안 가구요, 가해자의 상식으로 언론이 움직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러니까 언론이 이끌어 가는대로 댓글이 나올 수밖에 없죠. <미투가 변질되고 있다> 이런 식의 언론이 원하는 방식으로 여론이 흘러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피해자는 말은 다 적어주고 가해자 이야기는 듣지 말라는 거냐. 그런 이야기가 아닙니다. 앞으로 보도에서 피해자의 이야기는 다 인용하고 가해자의 해명은 싣지 말자는 식의 논의를 하고 싶은 게 아니구요, 언론과 법의 역할을 구분하자는 겁니다. (미투 선언 이후에 사실을 다투는 것은) 언론이 해야 할 일이라기보다는 법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고, 만약 해결과정에서 법이 보수적이라면 보수적인 법의 테두리를 지적하는 것을 언론이 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어제 자 부산일보 기사를 하나 가져왔습니다. 좀 생뚱맞다고 생각하실 수도 있지만 같이 볼게요. <부산 초등 교단 ‘남19: 여81’ 불균형> 부산 초등학교 교단에 남자는 2명인데 여자 교사는 8명이다. 교사 성비가 불균형하다. 그래서 우리 아이들이 왜곡된 성인식을 가질 수도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저는 언론은 왜 똑똑한 여자는 교단으로 향하는데 똑똑한 남자들은 법대를 가고 의대를 가는지 질문을 던져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또 유치원 교사 중에는 분명 여자가 많지만, 대학 교수를 보면 남자 밖에 없거든요. 그러니까 이런 구조적인 문제에 대해서 언론이 지적을 해야 되는데, 지금 미투 운동이 벌어지는 와중에 이런 기사를 실어서 ‘아니다. 우리 사회는 여권이 높다’는 식으로 여론몰이를 해 가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하구요. 그래서 분명 법이 해야 할 일이 있고, 법이 일을 잘하지 못한다면 그것에 대한 지적을 언론이 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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