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풍요 속의 빈곤 ‘풀뿌리 민주주의’에 ‘풀뿌리 언론’이 없다 이 상 기 부경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부산민언련 정책위원 1명, 300명, 4,227명. 눈치 빠른 사람은 알 것이다. 한국에서 공직 선거를 통해 뽑는 인원수다. 지방선거에서 선출하는 인원이 많다 보니 부작용도 적지 않다. 첫째, 고만고만한 일꾼 중에서 옥석을 가려내기 힘들다. 둘째, 입이 많아진 만큼 감언이설이 넘치지만 가슴을 울리거나 무릎을 치게 하는 말을 찾기 힘들다. 셋째, 미디어는 홍수같은데, 유권자나 후보자 공히 어느 매체를 통해 유효한 정보를 습득하고, 자신을 홍보해야 하는지 잘 모른다. 한 마디로 지방선거에서, 후보자와 미디어는 차고 넘치는데 뭔가가 부족하다. ▲ 부산 연제구 도로변에 부착된 지방선거 후보자들의 선거 벽보 (출처: 연합뉴스 2026/05/21)서로 사랑하는 부부조차 집안일을 놓고 미묘한 기싸움을 하듯, 둘 이상의 인간이 모인 사회에서 힘(power, 권력으로도 읽힌다)의 배분을 둘러싼 이해 갈등은 상수다. 인간이 정치적 동물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현역 기초의원이기도 한 대학원 학생이 있어 물어보았다. “구의원이 하는 주된 역할이 무엇인가요?” “민원을 해소하는 거죠. 얼마 되지 않는 예산이지만 그것을 제대로 집행하는지 감사하는 역할도 크고요.” 선거란 나 대신 귀찮은 일을 수행할 공복을 뽑는 일이기도 하지만, 자신을 대표할 사람을 뽑는 의미에서 더욱 중요하다. 근대 민주주의 사회에서 언론이 등장하게 된 배경이기도 하다. 즉, 후보자의 인물 됨됨이에서부터 능력과 자질을 시시콜콜히 알려줌으로써 유권자의 선택에 도움을 주고자 한 것이 근대 언론의 제일가는 존재 이유였다. 서기 2000년을 전후하여 언론 생태계는 디지털(인터넷) 시대 혹은 스마트(소셜) 미디어 시대로 접어들었다. 해외에서는 구독료와 광고 등 기존 수익 기반이 새로운 미디어로 흘러 들어감으로써 기성 언론의 수가 줄었다. 곧 ‘언론의 사막화’ 현상이다. 반면, 한국은 언론사 수가 증가한 기현상을 보이고 있다. 기성 언론보다는 인터넷 언론사가 늘었다는 게 보다 정확한 분석일 것이다. 많은 인터넷 언론사가 자극적인 제목, 실시간 검색어 편승, 유사한 기사(어뷰징) 양산을 통해 조회수 올리기에 급급함으로써 언론 생태계를 어지럽히고 있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 대표적 사례다. 전국지 혹은 서울 소재 방송사들은 너무 많은 후보자로 인해 유권자의 관심을 살 만한 인물 중심으로, 지역별로 천차만별인 공약 검증보다 표피적인 사건이나 정치인의 말에 매몰될 수밖에 없다. 4,227명의 몇 배수(최소 두 배)는 이들이 감당할 수 있는 임계치를 넘어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지역지나 지역 소재 방송사들의 형편이 나을까? 이들 역시 광역 단체장, 교육감, 시·구청장 정도에 역량을 집중할 수밖에 없다. 기초자치단체 후보자(2,988석)까지 감당할 여력이 없는 것이다. 지방선거를 ‘풀뿌리 민주주의’라고 하지만 ‘풀뿌리 언론’은 없는 셈이다. 지방선거 보도에서 각종 문제로 언급하는 사안의 본질이 여기에 있다. ▲ 한 아파트 우편함에 배달되고 있는 6.3 지방선거 선거공보물 (출처: 연합뉴스 2026/05/25)며칠 전 묵직한 지방선거 공보물 봉투를 받았다. 언론에서 찾아볼 수 없었던 지역 일꾼들의 면면을 살필 수 있었다. 그렇지만 돈이 많은 정당 후보들은 몇 페이지에 걸쳐 자신을 알린 반면, 돈이 적은 정당이나 무소속 후보들은 양면으로 인쇄된 한 장의 ‘찌라시’같은 홍보물로 자신을 알리고 있었다. 이러한 차이를 유권자들은 어떻게 받아들일까? “정치적 힘은 결국 세력에서 나온다”며 거대 정당 중심으로 표를 몰아주지 않을까? 같은 이유로 입후보자들 역시 거대 정당의 공천을 받는 것에 사활을 걸 수밖에 없지 않을까? 공보물의 페이지를 통일해야 최소한의 ‘평등 선거’라 할 수 있다. 선거법은 12면(지방자치단체의 장) 이내, 8면(지방의회의원 및 교육감) 이내의 제한을 두고 있지만 거대 정당 후보자는 최대 면수를 채우고, 소수 정당 및 무소속 후보자는 최소 면수(2면)만 채우는 실정이다. 물론 공보물의 면수를 몇 면 이상 몇 면 이내로 규정하면 선거비용이 늘어나는 문제가 있을 것이다. 일부 후보는 허접한 내용으로 유권자의 눈살을 찌푸리게 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몇 면 이상을 채울 정책이나 비전도 제시하지 못하는 후보자라면 지방선거에 감히 나서지 못하게 하는 자정 효과도 있지 않을까? 또, 인쇄 공보물의 비용과 환경 훼손 등이 문제라면 디지털 방식으로 전환하거나, 공영형 지방선거 플랫폼(후보자 공약 비교 등)을 모색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재명 대통령, 김두관 전 국회의원 등 기초단체장(시장, 군수)부터 시작해 주요 정치인으로 성장한 사례가 더러 있다. 우원식 국회의장, 김태호, 강득구, 백종헌 의원 등도 광역시·도 의원으로 출발해 국회에 입성했다. 정원오 후보는 이번 지방선거에서 가장 주목받는 전국구 스타가 되었다. 그는 구청장 비서실장으로 정계에 입문해 국회의원 보좌관, 성동구청장을 거쳐 더불어민주당의 서울시장 후보가 되었다. 그렇지만 기초의원 출신으로 전국적인 지명도를 가진 인물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이런 점에서 기초 의원 및 광역시·도 의원 출마자들의 연령대가 확 낮아졌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이들이 현장 정치의 가장 미세한 영역에서 출발해 단체장, 국회의원 등으로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정치 효능감이 생길 것이다. 정치적 신념을 잃지 않고 묵묵히 최선을 다한다면 하늘(민심)도 알아줄 날이 온다. 언론이 지방선거 무대에서 정치 스타를 키우기 힘든 구조라면, 후보자 스스로 정치 스토리를 만들어 나갈 수밖에 없다. 얘깃거리가 있으면 언론은 오지 말래도 냄새를 맡고 찾아오기 때문이다. 결국 지방정치, 더 나아가 한국정치의 미래는 언론이 참신한 정치 신인을 발굴하고, 이들의 성장 과정을 지속적으로 추적 보도하는 데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모든 후보자들의 무운을 빈다. <끝> 🔈[알립니다] 6.3 지방선거, 부산민언련 정책위원회 릴레이 특별칼럼 연재를 마무리합니다! 부산민주언론시민연합은 2026년 6월 3일 시행되는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를 맞아, 유권자의 눈과 귀가 되는 건강한 선거 보도 문화를 정착시키고자 ‘정책위원회 릴레이 특별칼럼’을 연재해 왔습니다. 선거를 이틀 앞둔 오늘, 그동안 숨 가쁘게 달려온 릴레이 특별칼럼의 마지막 편을 전해드립니다. 그동안 부산민언련의 칼럼 연재에 따뜻한 관심과 격려를 보내주신 시민 여러분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이번 칼럼이 유권자 여러분의 현명한 선택에 소중한 이정표가 되었기를 바라며, 다가오는 6월 3일 꼭 투표장에 가셔서 우리 동네의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
▲ 부산 연제구 도로변에 부착된 지방선거 후보자들의 선거 벽보 (출처: 연합뉴스 2026/05/21)
▲ 한 아파트 우편함에 배달되고 있는 6.3 지방선거 선거공보물 (출처: 연합뉴스 2026/05/25)